곰팡이 축농증 수술, 나한테 왜 그래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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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OPeration
오늘의 수술
▶ 축농증 수술
▶ 마취 : 국소 수면 마취
1
훗, 그깟 곰팡이
대개 부비동 내에 생기는
곰팡이 축농증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우연하게 발견되곤 합니다.
뚜렷한 증상을 유발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대개 두통 증세로
뇌 MRI 촬영을 진행하다가 포착되는
사례가 정말 많습니다.
오늘 내원하신 환자분 역시 머리가 아픈
두통 증상으로 인해 MRI 검사를 진행하셨고,
이후 추가적인 CT 촬영을 통해 최종적으로
곰팡이 축농증 진단을 받게 되셨습니다.
이처럼 코안에 곰팡이가 둥지를 트는
곰팡이 축농증, 즉 진균구(fungal ball)를
뿌리 뽑기 위한 유일한 치료 대안은
오직 수술적 제거뿐입니다.
간혹 이러한 진균구 증상을
한약 처방으로 다스린다는 한의원 광고들을
드물게 접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비유하자면 몸에 총을 맞아 박힌 총알을
빼낼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먹는 약만
밀어 넣는 꼴과 다름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을 먹는다고 한들
살 속에 박혀버린 총알이 제 발로
빠져나오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러니 코에 농이 차는 축농증 소견이 관찰된다면
한의원 치료에만 매달리지 마시고,
반드시 이비인후과를 한 번쯤 방문하셔서
진료를 받아보시는 것이 여러모로
지혜로운 판단입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진균구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축농증 수술
과정이 비교적 심플하다는 사실입니다.
집도에 요구되는 술식도
단 한가지에 불과합니다.
상악동 창냄술 (Antrostomy)
이 구멍을 넓혀주는 한 가지 술기만
제대로 수행하면 모든 상황이 정리됩니다.
통상적으로 코 질환을 다루는
이비인후과 코전문의가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임상에서 가장 먼저 손에 익히게 되는
기초 중의 기초에 해당하는
축농증 수술 기법입니다.
그렇기에 저 역시 환자분의
부비동 CT를 훑어보며
"음~ 아주 전형적인 형태의 진균구가
자리 잡았네"라고 혼잣말을 삼켰습니다.
"그깟 코 곰팡이 수술쯤이야 길어봐야
20분 안팎이면 가뿐하게 끝나겠어. 홍홍홍."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소 가볍고
낙관적인 계산을 세우고
수술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2
어제는 없었잖아..
수술실 내부 상황입니다.
내시경을 진입시키자마자 중비도 틈새에서
누런 농이 마치 댐이 무너진 듯 폭포수처럼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어라, 분명 어제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환자분의 개인적인 급한 사정으로 인해
첫 진료를 보신 바로 다음 날
초고속으로 수술 일정이 잡혀 진행되었습니다.
불과 하루라는 짧은 시간 사이에
코 내부 환경이 이토록 악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뿜어져 나오는 농의 부피와 양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집도하는 내내 끝도 없이
끊임없이 분출되어 흘러나왔습니다.
단 몇 시간 만에 이처럼 급격한
세균 감염이 진행되어 농성 분비물들이
부비동을 빈틈없이 채우는 케이스는
임상적으로 무척 흔치 않습니다.
이는 전격성 감염 상태로 봐야 마땅합니다.
유추해 보건대 수일 전부터 이미
부비동 감염이 돼서 농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교묘하게도 저와 진료를 마치고 돌아간 시점부터
축적된 농들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왈칵 흘러넘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전날 확인했던 CT 영상 상에는
이런 염증 소견은 없었거든요.
일반적으로 이 정도로 극심한
급성 염증 소견이 관찰되는 타이밍에는,
균을 가라앉히는 항생제 약물을
최소 3일가량 복용하고 난 뒤에
수술을 진행하게 됩니다.
마취 방법 역시 잠재적 통증을 고려해
전신마취 방식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게 됩니다.
염증 반응이 격렬하면 국소마취 주사를 놓더라도
환자분이 느끼는 통증 제어가 원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술 조작 중에
피가 많이 나는 출혈 경향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출혈이 시야를 가리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져 자칫 수술 소요 시간이
끝도 없이 길어지는 늪에 빠질
위험성이 농후합니다.
실제 녹화된 수술 영상을 돌려보면
제가 순간 당황하여 허탈한 헛웃음을
흘리는 대목이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급박한 일정으로
서둘러 수술을 잡았는데, 하필 이런 험난한
변수가 눈앞에 펼쳐지니 집도의 입장에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철렁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자, 이제 본론입니다.
비록 갑작스러운 세균성 감염증으로
밀려드는 엄청난 농성 분비물 양에 잠시
놀라기는 했으나, 오늘 수술의 목적은
코 안의 곰팡이를 완벽히 제거하는 일입니다.
이 거대하게 자라난 진균구 덩어리가
그간 내부의 염증을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데
대단히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을 것이 자명합니다.
이 근본적인 곰팡이 덩어리를
완전히 제거해 내지 못한다면,
이러한 고통스러운 세균성 급성 감염 현상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항생제를 반복하여 복용하게 되고,
결국 항생제 내성이 생길 수 밖에 없게되죠.
약이 듣지 않는 내성 상태가 유발되면
염증 조절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면서
감염의 수위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집니다.
즉,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끝없는 악순환의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농들을 석션으로 싹 걷어내고
상악동 창냄술을 통해 진입로를
넓혀놓자마자,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던
거뭇거뭇하고 거대한 곰팡이 덩어리의 실체가
즉각적으로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곰팡이 덩어리들은 코안에 남아있던
누런 농성 분비물들과 한데 뒤엉켜
엉망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마주한 곰팡이의 물리적인 부피감은
어마무시한 수준이었습니다.
우선 석션 기구의 팁이 닿는 부분은
직접적으로 제거해 나갑니다.
집중력을 유지하며 열심히, 정말 열심히
손을 움직였습니다.

곰팡이 덩어리를 찔러 조금씩 부수어가며
끄집어내는 방식만으로는 구석진 공간을
완벽히 청소하는 데 분명
구조적인 한계가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이제 다음 단계인 부비동 세척(Irrigations)을
진행할 차례입니다.

4
부비동 세척, 네가 다 했다
진균구 곰팡이 축농증 수술 과정에서
부비동 세척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흡인용 석션 팁의 끝부분을 아무리
정교하게 구부려 밀어 넣는다 한들,
상악동 내부의 해부학적 사각지대인
전방 구역이나 저 밑바닥 구석까지는
기구가 물리적으로 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구 접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각도상 내시경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도
내부 상태가 선명히 시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강한 수압을 이용한 세척은
눈길이 미처 닿지 않는 외딴 틈새에 숨어
숨죽이고 있는 잔여 진균구 입자들까지
말끔하게 씻어내어 밖으로 밀어내 주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물론 간혹가다
이러한 수압 세척 세례를 퍼부어도
벽면에 딱 달라붙어 꿈쩍도 하지 않는
지독한 곰팡이 개체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난관에 봉착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뺨 쪽 전방으로 우회 접근하여
상악동을 감싸는 안면 뼈 구조에 인위적으로
작은 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상악 천자'라는 다소
침습적인 수술 기법을 동원해야만 합니다.
다행히 흔하게 발생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자, 첫 번째 파워 이리게이숀!!
강하게 발사합니다!!!!

세척 과정을 거치고 나면 수압에 밀려 나온
곰팡이 부스러기들이 코 내부 공간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흩어지게 됩니다.
흩어진 파편들을 하나씩 정성껏 주워 담으려고
내시경 카메라를 다시 밀어 넣었는데,
순간 제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무려 3cm 가량이 훌쩍 넘는
거대한 용종(물혹) 덩어리가
밖으로 툭 튀어나온 것입니다.

상악동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녀석인데,
아마도 묵직한 곰팡이 덩어리 바로 바로 옆에
꽉 끼인 채 숨어있던 용종 조직으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커다란 물혹이 또 그에 못지않게
거대한 사이즈의 곰팡이 덩어리와
한 공간에서 동거를 하고 있는 케이스는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면서도 아주
드물게 조우하는 희귀한 광경입니다.
좁은 방 안에서 서로 얼마나 웅크린 채
부대끼며 지내왔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다행히 발사한 세척 수압의 위력이
워낙에 강력했던 덕분에,
용종의 깊은 뿌리 부착부까지 통째로
분리되어 시원하게 뽑혀 나왔습니다.
그냥 하는 세척이 안됩니다.
반드시 이처럼 강하게 밀어붙이는
파워 이리게이션 형태가 되어야만
이끌어낼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이 거대한 용종의 실체까지 확인하고 나니,
왜 그토록 코 안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고름이
끊임없이 생성될 수밖에 없었는지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환자분의 좌측 상악동 내부는
단순히 곰팡이만 있던 게 아니라,
물혹을 동반한 전형적인 만성 부비동염 상태였고,
이것이 요 며칠 사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급성 악화 패러다임을 일으킨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커다란 부피의 곰팡이 진균구가
세균들이 번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양 기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었을 것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염증 반응이 폭발하듯
요동친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제야 어느 정도
납득이 갑니다.
곰팡이, 세균, 그리고 용종까지
나쁜 녀석들 삼형제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야말로 '삼형제의 난'이라고 명명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곰팡이 세력, 세균 번식 세력, 물혹 조직이라는
세 종류의 문제아 무리들이 오랜 세월 동안
어두컴컴한 상악동 내부를 무단 점거한 채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전성기는
오늘부로 완전히 종말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방을 깨끗이 비워주어야 할 시간입니다.
수압 세척의 영향으로 코안 여기저기
흩뿌려진 곰팡이 잔해들을 핀셋으로
꼼꼼하게 주워 담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모든 사태의 배후이자 대장 격인,
가장 안쪽 깊은 곳에 완고하게 버티고 서 있던
코어까지 깔끔하게 제거해냅니다.

이로써 숨어있던 핵심 곰팡이 세력까지
전부 제거해 내었습니다.
원체 덩치도 컸고 깊은 사각지대까지
뿌리를 뻗고 있던 지독한 녀석이었기에,
완벽한 확인사살을 목적으로 한 번 더
2차 세척 과정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파워~ 이리게이숀!!
5
라스트 씬
모든 세척 단계가 완료된 이후
최종적으로 확인한 코 내부의 모습입니다.
처음에 그 난장판이던 공간이 아주 깨끗하고
투명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수술 전에는 바늘구멍 점 수준으로
꽉 막혀있던 상악동의 자연공 입구가,
이제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보다 훨씬 더 넓고
큼지막하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다만 워낙 주변 염증 수위가 높았던 터라
수술 경계 부위 주위로 출혈이 다소 관찰됩니다.
전반적인 수술 완성도는 아주 훌륭하게
잘 이루어졌습니다.
지혈거즈를 빈틈없이 삽입해 주며
오늘의 고된 집도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아울러 환자분의 상악동 내부에서 제거해 낸
곰팡이 조직과 용종 덩어리들은 한 톨도 빠짐없이
명확한 감별을 위해 병리 조직검사 센터로
접수시킵니다.
라스트 씬, 곰팡이와 용종 검체
흡인기 석션 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곰팡이 입자들의 부피까지
역산해 본다면, 환자분이 본래 코 안에 품고 있던
실제 곰팡이의 총량은 위에 보이는 검체 부피의
거의 두 배라고 보면 되겠네요.
걸쭉했던 누런 고름들은 전부 석션으로
제거했기 때문에 최종 검체 증빙 사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렇듯 상악동을 괴롭히던 삼형제 무리들은
오늘부로 모두 흔적 없이 깨끗하게 소거되었습니다.

원체 염증이 심했던 상태였기에,
수술 이후에도 당분간은 염증을 가라앉히는
항생제를 꼬복용하셔야만 합니다.
오늘 국소마취로 고된 수술 과정을
꿋꿋하게 버텨내시느라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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