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에세이: MEDical - ESSAY

내 인생, 내 목에 박혀 있는 저 무자비한 생선 가시처럼....

강동훈 1 9844 1

 

"목이 너무 아파서 침도 못 삼키겠네요.  점심 먹고 나서부터, 생선 가시가 걸린 게 틀림없어요."

 

 

 

 

아주머니는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대뜸 하소연합니다. 생선을 먹은지 두 시간 가량 지났지만 울대 부위의 통증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서둘러 후두내시경 검사를 해봅니다.
 
"어이쿠, 이런"

내시경 끝이 후두 쪽을 비추자마자 탄성이 나옵니다. 큰 생선 가시가 식도 입구 근방까지 내려가서 들키지 않으려는 듯 깊숙이 박혀 있는 것입니다. 얼추 손가락 두 마디는 되어 보였습니다.

 

 

 

목구멍 깊은 곳에 누군가가 저주하며 꽂아놓은 듯한 가시의 뾰족한 모양새가 내시경과 연결된 모니터에 적나라하게 펼쳐졌고, 본인의 목 안쪽 상황을 두눈으로 마주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직업적인 멘트와 억양으로 양해를 구했습니다.

"가시가 깊이 박혀있어요. 깊이가 있어서 특별한 기구가 필요해요. 준비하는 동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갑자기 흐느끼듯이 말합니다.
 
 
"별것도 아니면서, 오랜만에 묵은 생선은 까시가 목에 걸리뿌고,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은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지고, 내 몸은 갈수록 축나고,  내 인생이 도대체 와 이럽니까.. "
 
금방이라도 큰 울음을 터트릴 것 같으셨습니다. 저와 간호조무사 선생은 순간 얼음이 되었고 살며시 눈치를 살핍니다. 공감력이 우주 최고인 남선생은 금새 아주머니를 안고서 토닥여줍니다.

"별로 힘들지 않을 거예요. 금방 끝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아주머니는 최근에 감기로 자주 오셨어요. 악성 기침, 그것은 효과 좋다는 기침약을 죄다 복용해도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네요"라는 무덤덤한 경과로 처방한 의사를 좌절시키는, 아주 독한 감기의 증상입니다. 얼추 2주 넘게 약을 복용하신 것 같은데, 처음보다는 조금 낫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침을 한다고 합니다. 2주간 심한 감기를 앓으면서 기력을 잃으셔서 인지, 목에 걸린 생선 가시는 본의 아니게  아주머니의 힘든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든 역적이 되었습니다.

 중환을 앓고 있는 남편분을 병원에서 몇 달째 간병한다는 것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하고 나약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간병하는 가족들은 현명하게 페이스 조절하면서 긴 시간의 싸움을 잘 대처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이를 간병할 사람이 오직 나뿐이라면, 간병인에게 그이를 종일 맡기면 당신의 병이 원망스럽긴 해도 사랑하는 그 사람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그래서 내가 매일 그이 옆에 있어야 한다면.

 가시는 목을 찌른 게 아니라 그렇게 아주머니의 아픈 마음을 찌른 것 같습니다. 체했을 때 손끝을 따면 나오는 검붉은 피. 그 피는 정맥이기에 검을뿐이지만 손끝의 아릿한 통증이 잠시나마 체한 속을 잊게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생선 가시는 아주머니의 마음을 따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검은 피 대신 누르고 누른 절규가 신음처럼 흘러 나온 것이리라.

 

 

 

쭉 펴면 3cm 은 족히 되어 보이는 생선가시입니다.​ 

 

 

10초도 되지 않아 순조롭게 가시를 빼냈지만 아주머니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구역질 때문에 그런 건지, 가시가 너무 세게 마음을 따서 그런 건지는 저도 알 길이 없습니다. 아주머니는 앞으로 몇 달은 생선을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며 우는 듯 웃으면서 가셨어요.

 "하지만 생선은 건강에 좋고 맛나답니다. 가시는 조심하셔야 하지만..."  

이 말이 입술 끄트머리까지 올라 왔지만 용케 잘 참았습니다. 가끔 문맥상 초를 치는 옳은 소리에 집착하는 스스로가 이제 지겹기도 합니다.

 부디 어서 감기 나으셔서 기운을 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도 살만하네!라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셨으면 좋겠네요.

 

 

 

 

 

 

 

 -쓰다가 생각난 책....


 

#1

 내게는 이제 목숨을 더 걸 여력도 없어서, 생이 늘 살얼음판을 걷는 듯 버거웠다. 가끔씩 기도 중에 나는 신에게 강경한 어조로 말해왔던 것이다. 더 이상은 싫어요, 더 이상은 못해요, 더 이상 내게 나쁘게 하시면 안돼요, 당신은 정말 내게 그러면 안 돼요.

 

 

#2

나는 2년전 내가 그러했듯 급하게 에픽테토스의 책을 펼쳐 들었다. 하도 읽어서 그 페이지가 금방 드러났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표상(表象)이다.

 

 - 공지영,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의 월춘장구 중에서

 

 

 

 

 

 

1 Comments
지나가는이 2017.07.22 01:51  
글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ㅠㅠ. 쌤도 아주머니도 맘 고생하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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