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에세이: MEDical - ESSAY

급성 편도염과 열차에서 내릴 수 없는 사람들 : 신남역과 코리아이비인후과

강동훈 3 5563 2

 

심한 편도염 때문에 밤마다 고열이 나고, 밥은 삼킬 때마다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으로 먹는 듯 마는 듯, 이제는 기침에 가래까지 더해져 몰골이 파리하다 못해 잿빛의 좀비 같은 청년 환자분이 날 좀 어떻게 해봐 봐하고 제 앞에 앉아있습니다.
 
잔뜩 쉰 목소리로
 
"죽겠어요."
 
이 한마디에 진이 빠져 다음 말을 위해 숨을 고르는 듯합니다.
 
내시경으로 목 안을 봤어요.

 

 

 

 

편도 주변에 하얗게 심한 염증 소견이 보입니다.

 

 

 

 

성대와 기관지의 점막이 발적되어있고 가래도 나오네요.

 

 

 "급성 편도염에, 후두염, 기관염까지, 아마 편도염이 그 시작이었겠죠. 염증이 밑으로 죽죽 내려가네요. 다행히 청진 소리로 봐서는 폐렴은 없습니다.  열도 높은데... 괜찮다면 짧은 수액과 주사약을 맞고 가시죠? "
 
열거한 진단명 따위가 뭐 중요하냐는 눈빛으로 저를 쏘아 봅니다.  

"얼마나 걸려요? "
 
"10분 정도면 됩니다."
 
10분. 핸드폰으로 인터넷 서핑하면서 대변을 보면 아래를 닦기도 전에 지나가는 시간. 담배 한 대 피면서 커피 한 잔 마시면 미처 커피잔을 다 비우지 못할 수도 있는 그 시간. 환자분은 뭐가 그렇게 고민이 되었을까요? 저 정도의 상태라면 고민할 것도 없는데라는 의료인으로서의 생각은 독단일 수도 있겠지요.
 
"안되겠네요. 빨리 들어가 봐야 해서"
 
"그래요. 그럼 간단한 해열제 주사만 드릴 테니 그거 맞고, 약은 항생제 포함해서 3일 치 드릴 테니 나중에 와서 경과를 봐요."
 
환자분은 제 말에 힘들게 눈알을 굴리면서 생각에 빠집니다.
 
"5일 치 줄 수 없나요? 제가 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직장이 근처인데, 왜 오기가 쉽지 않을까라는 주치의로서의 판단은 역시 독단일 수도 있겠죠.
 
"알겠습니다. 가능하면 5일 뒤에 와서 목하고 확인을 했으면 해요. 그리고 푹 쉬셔야 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아차 합니다. 푹 쉬세요라는 말은  환자에게는 우주에서 가장 무의미한 에너지 낭비 같은 메아리로 들렸을 테고, 직장인에게는 저주 같은 주문으로 들릴 텐데. 짧고 무안한 침묵 뒤에 환자분이 무겁게 입을 엽니다.
 
"네, 그렇겠죠."
 
 
 
아프면 쉬어야 하는데. 그건 너무 당연한 건데. 직장생활하면서 감기 따위로 병가를 내고 쉰다는 건 시속 150km로 달리는 열차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리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봅니다. 얼마나 심한 감기여야지 열차를 세워줄까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열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그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 내려서 쉬어가면 지금 어디쯤인지는 알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다음 역까지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생각과 망상, 상상력을 동원해 미래의 청사진도 그려보고, 그리운 님 추억도 해보고 할 텐데 우리는 도무지 내릴 생각을 못합니다. 창밖으로 내려선 사람들의 뒷모습이 드문드문 보입니다.그들을 부러운 듯 무심한 듯 바라보면서 작은 한숨을 내쉬고 내가 내릴 수 없는 이유 십여 가지를 유추해냅니다.

 

 

 

 

 

  노 리플라이(No reply)의 환상 열차(Fantasy Train)라는 곡이 있습니다. "분명 어디선가 멈춰 서야 했는데"라는 가사 한 문장을 듣기 위해 한 달에 스무 번 정도는 이 노래를 듣는 것 같군요. 필요한 상황에서라면 언제든지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도록, 그래서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멈춰 설 수 있도록,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의미로 저는 이 부분의 가사를 매우 좋아합니다.

 저희 병원이 신남역에 있어서인지 역에서 내려 지나가다 들리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런 감기로 방문하시죠. 그분들이 신남역에 내려서 저희 병원을 방문하기는 했지만, 우리들의 인생 열차는 정말이지 언제쯤 제대로 한번 멈춰서 쉬어 볼까요?

 

 

 

 

 

Fantasy Train  - 노리플라이

  

길을 잃은채 늘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
발디딜틈도 마음둘곳도 없는 작은 공간에....
 
 
저 언덕넘어 나의 꿈이 있을까, 시간은 내 등뒤를 쫒아오고 있는데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따윈 없는 내 바쁜하루, 끝 없는 하루
 
 
난 어디쯤을 지나치고 있을까
분명히 어디선가 멈춰서야 했는데
난 그냥 여기 앉아있었던것 뿐이야
그것뿐이야
 

 

 


 

 

 

video & photo EDITION by 강동훈

photo by #박병성 [인스타그램 @grabthestars]
M/V : No Reply, Fantasy train, "Road"

THERE'S NO COMMERCIAL PURPOSE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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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Philip 2023.02.2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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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2023.02.26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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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초이 2020.08.29 19:18  
환자분이 많이 아픈게 느껴질 정도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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