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에세이: MEDical - ESSAY


 

후비루성 목 이물감 : 눈으로 볼 때 달라지는 것들

강동훈 2 9202 1

 

환자분은 저를 보자마자 지난 수개월간의 병력을 속사포처럼 읊기 시작하셨어요.
     
“ 목에 뭔가 계속 걸려있는 것 같은데, 벌써 몇 년 됐지요. 가래인가 해서 캑캑 뱉어보면 또 나오지도 않고. 이래가지고 내가 유명한 이비인후과는 다 가봤지. 어디도 가보고 어디도 가보고. 대구 말고 서울에 용하다는 데도 다 가봤어요....... (중략 ^^;;) ...해도 해도 안돼가지고 얼마 전에 내과 가서 위내시경까지 받았다니까. 근데 거기서 위염에 식도염까지 있다고 하더라고요. ”
     
여기서 한번 끊어주지 않으면 한 시간은 더 말씀하실 것 같아 불쑥 끼어들었습니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약도 드셨어요?”
     
아주머니는 옳거니 하시면서
     
 “맞아요, 역류성이라고 하면서 약도 세 달 넘게 먹었어요. 그게 지난주까지 먹었죠. 그런데 하나도 좋아지는 게 없어요. 삼 개월이나 먹었으면 뭐가 좀 나아져야지,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이리로 온 거예요. 안 그래도 주변에서 얘기 들으니까 여기가 잘 본다고(감사합니다.)...  며느리가 하는 말이 .... 친구 중에 누가 ....가끔 귀도 먹먹하고... (중략)..... (물론 저는 주의 깊게 듣고 차트에 중요한 병력을 입력합니다.;;;) ”
     
미소와 함께 눈을 꿈뻑꿈뻑 하면서 상대 후보의 얘기를 듣던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으로 빙의한 상태로 있다가 곧바로 후두 내시경 검사를 합니다.
    
    



 
내시경에 잡힌 진득한 점액성 분비물. 역류 약을 드셨다면 아마도 가장 강력한 위산분비 억제제인 PPI를 복용하셨을 테지요. 12주간 복용 후에도 증상 호전이 없다면 다른 원인을 고려해봐야 할 텐데, 마침 두 눈으로 확인한 내시경 사진은 선선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는 맑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치료 방향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북극성을 마음에 품고서 아주머니에게 다시 한번 물어봅니다.
     
“지금도 목에 뭔가 걸려있는 것 같나요?”
     
“그렇다니까요. 뱉어내려고 용을 써도 안 나와요.”
     
“혹시 콧물이 목뒤로 넘어가는 느낌 같은 게 있나요?”
     
그건 또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저를 봅니다.
     
“그러니까 콧물이 앞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코 뒤쪽으로 넘어가는 거죠. 목젖에 걸려있는 느낌이라든가. ”
     
“ 그런 건 전혀 없어요”
     
후비루가 없으니 내과에서는 3개월간 인후 역류질환 (혹은 역류성 식도염)으로 치료를 했나 봅니다.
     
 종종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환자의 병력만을 듣고 분석하면  3개월간의 역류성 식도염 치료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후두 내시경을 확인하면 지난번 치료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과는 달리, 과학이라는 것은, 또 의학이라는 것은 별 수 없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명징한 증거에 무릎을 꿇고 수용할 수밖에 없겠지요. 설사 이 진득한 점액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향후 치료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기도 합니다. 이미 역류질환 치료는 실패했으니 말이죠.   
     
 눈으로 확인했으니, 이제 행동으로 옮겨야겠죠. 우선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 후비루 치료약을 5일 치를 드렸습니다. 다음 외래 때 환자분과 함께 미소 지을 수 있을지 두고 봐야겠지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느낌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약물 치료가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그 다음의 치료가 남아있습니다. 물론 환자분의 입장에서는 그 최후의 치료가 고역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부디 약물치료가 효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2 Comments     0.0 /
Kans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