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에세이: MEDical - ESSAY

개방성 이관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서문시장 프로젝트]

강동훈 0 1885 2

 

 

 

 


#1. 개방성 이관증
 
단정한 옷매무새, 수수한 차림의 할머님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네요. 약간은 통통한 볼살과 백발 곱슬머리가 콧방울까지 내려온 금테 안경과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여든이 넘으신 할머님은 천천히 유닛 의자에 앉으십니다.
 
양쪽 귀에, 소리가 너무 왕왕거리고 울려서 힘이 들어요. 제 숨소리도 쉭쉭하면서 너무 크게 들리고요.”
 
귀 안쪽을 내시경으로 보면서 몇 가지를 물어봅니다.
 
언제부터 그러셨지요?”
 
일주일 되었습니다.”
 
귀 안쪽의 고막과 귓 길은 아주 깨끗하고 건강해 보입니다. 할머님은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 깜쪽같이 왕왕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다시 상체를 일으켜 앉으면 뭔가 딸깍 소리가 나면서 다시 소리가 왕왕 울려요.”
 
할머님의 증상 묘사가 저는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자성 강청(自聲强聽)이 있으시고 체위에 따라서 증상이 호전되는 양상을 보니 개방성 이관증 (patulous E-tube)으로 진단할 수 있는데, 확실히 하기 위해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죠

 

 

 

 

 

 






그렇군요. 할머님, 혹시 최근에 과로를 하셨거나, 체중 변화가 있거나 하지는 않으셨어요?”
 
개방성 이관증의 교과서적인 증상들을 다 가지고 계시구나 생각하며, 글쎄 요즘에 과로도 했고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어요- 정도의 대답을 예상했지만, 의외의 대답에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제가 폐암이 있어요. 많이 퍼져있는데. 하지만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전부 안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부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지내다 가려고요.”
 
저를 향해 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들어오실 때부터 간간이 마른 기침을 하셨네요.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안경 너머에 할머님의 초연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울대에 멍울이 앉으며 먹먹 해지기 시작합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마냥 숨이 막힙니다. 통제불능의 눈물은 벌써 각막을 적셔옵니다. 환자분과 남선생이 눈치를 챌까 모니터로 얼굴을 돌리며 어금니를 꽉 깨물지만 머리는 하얀 백지가 되어버렸습니다. , 이 무슨 주책일까.
 
인간은 태어나는 즉시 죽음과 생을 함께 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에 익숙해 질 수는 없는 일이죠. 하지만 할머니에게 죽음은 매우 가깝게 어쩌면 그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맞닿아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날씨를 얘기하듯 본인의 병력을 말하는 할머님의 눈빛에 흔들림은 없었습니다. 딱히 고통도 없어 보였습니다.
 
최근에 체중이 많이 빠지고 계신 거죠?”
 
그렇지요. 하루가 다르게, 몸무게가 줄고 있긴 해요.”
 
그리고 할머님에게 이관이 뭔지, 개방성 이관이 뭔지 설명합니다. 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일까 봐 유체이탈을 한 체로 말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군요. 할머니, 죄송합니다.”
 
분명하게 죄송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뭐가 죄송한 걸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간교하기 짝이 없는 말일뿐입니다.
 
“그렇군요.잘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담담하게 답하시고 자리를 뜹니다.
 
전공의 시절에 죽음과 마주하고 있는 환자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치의로서 약을 처방하고 각종 시술의 동의서를 받고 수술 설명을 하고 또 동의서를 받고 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몇 년간 그런 환자들 틈에서 다양한 일들을 했었지만, 오늘 같은 먹먹함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딱 한번 정든 환자분을 갑작스레 떠나보냈을 때 자책의 눈물을 한 달간 흘린 적이 있었지만요.
 
오늘의 이 먹먹함은 뭘까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죽음을 앞둔 중환자가 너무 흔해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는 환자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걸까요? 이제는 개인병원 원장일을 하면서 할머님 같은 중환을 너무 오랜만에 마주쳐서 그리고 중환자에 둘러싸여 있던 대학병원에서의 기억들이 그새 우주 저 멀리 광속으로 사라졌기에 이런 주책을 떠는 것일까요? 죽음 이란 것이, 죽음의 무게가 이렇게 환경에 따라 상대적으로 느껴져서 되는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결국 나는 문제가 많은 인간이구나로 결론이 나네요.

나름대로 죽음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고 죽음을 논하는 책들도 많이 봐왔는데.. 해마다 몇 번씩은 죽음과 삶에 대한 긴 시간의 사색도 빼먹지 않았는데.. 결국 내가 해왔던 성찰과 고민은 죽음을 마주한 할머님의 의연한 태도와 미소 앞에서 한낱 어리광으로 전락합니다.
 
 




 
#2. 엄마를 부탁해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바로 전화를 걸어 짧은 통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문득 어머니와 여행을 가본 게 언제이던가 하고 자문해봅니다.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도무지 생각이 안 납니다. 5년 전 딸아이를 데리고 함께 갔던 에버랜드가 떠오릅니다. 설마 그게 마지막이었나? 세상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에 이런 장면이 있지요.
   

저녁밥 대신 역촌동의 대형마트 안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두잔 마신 여동생이 가방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어느 쪽을 펼쳐 그 앞에 내밀었다. 생맥주 두잔인데 빈속에 마셔서인지 여동생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여동생이 내민 수첩에 적혀 있는 문장을 불빛에 비춰가며 읽었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생각이다.
나는 중국어를 배워야겠다.
나는 돈을 많이 가지게 되면 소극장을 소유하고 싶다.
나는 남극에 가보고 싶다.
나는 산티아고 성지 트레킹을 떠나고 싶다.
 
밑으로 서른 칸은 넘게 나는, 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게 뭐냐?
-지난 12월 31일에 새해를 맞이하며 글 쓰는 거만 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재미로 적어본 거야. 앞으로 십년 동안은 꾸준히 해야 할 것들이거나 하고 싶은 것들. 근데 내 어떤 계획에도 엄마와 무엇을 함께하겠다는 건 없더라. 쓸 때는 몰랐어. 엄마 잃어버리고 나서 다시보니 그렇더라구.
여동생의 눈이 물기로 반짝였다.

 

 

 

 

저 부분을 읽으면서, 성인이 되어 직장을 가지거나 가정을 꾸리고 하면 세상살이에 바쁜 대부분의 자식들은 응당 저렇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런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비난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때의 마음속 비난이 오롯이 저에게 되돌아옵니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환자를 진료한 오늘, 다행히 지금도 정정하신 어머니와의 여행 계획을 짜봅니다. 울대의 먹먹함은 이제 배꼽 주변을 맴돌고 있군요. 

 

 

 

 

 

 

코리아이비인후과 [서문시장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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